차박을 제대로 누리려면 차 바닥에 바로 앉아야 한다
‘투둑투둑.’ 한창 자다 깨보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트렁크 문을 열고 주섬주섬 신발 신다가 별안간 옛 기억 하나가 아스라이 머릿속을 스친다. 비 내리는 대청마루에 앉아 ‘뒷간’ 가려고 고무신 신던 어릴 적 풍경이다.
기아 카니발 트렁크 문짝이 빗물 막는 처마였고, 트렁크 바닥이 대청마루였다. 무엇보다 편한 마룻바닥을 떠나 비 내리는 마당을 가로질러야 하는 그때 그 귀찮음까지 그대로다. 카니발 트렁크는 어릴 적 마룻바닥에 얽힌 기억이 떠오를 만큼 쾌적했다.
솔직히 처음 시승차를 받을 때만 해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좁은 공간을 병적으로 싫어해 차박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어서다. 납작한 왜건 트렁크는 관짝에 누운 듯 답답하고, SUV는 허리 펴고 앉을 수 없어 다락방에 갇힌 기분이다. 카니발도 크다고 해봐야 어차피 차가 차 아니겠는가.
그래도 뒤쪽 공간을 키운 새로 나온 ‘카니발 아웃도어’인데, 차박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시승차를 받자마자 강원도 차박지로 출발했다. 처음부터 깜짝 놀랐다. 시동을 걸고는 ‘우와, 요즘 디젤은 이토록 정숙하단 말인가?’라며 감탄하다가 계기판을 보니 rpm 레드존(엔진 회전 허용 한계점)이 6750부터다. 사전에 디젤 시승차로 알고 빌렸는데 가솔린 모델이었던 모양이다. 최신 6기통 스마트스트림 엔진이니 조용할 수밖에.
모든 감각이 부드럽다. V6 엔진 특유의 정교한 회전 질감과 낭창낭창한 서스펜션이 어우러져 부드럽게 도심을 누빈다. 8단 자동변속기는 기어 바꿔 무는 속도가 빠르진 않아도 변속 충격을 잘 다듬어 안락한 승차감을 해치지 않는다.
거대한 차를 운전하는 감각은 아주 또렷하다. 휠베이스가 3090mm에 이르고 운전자 엉덩이가 앞쪽으로 바짝 붙은 탓에 뒷바퀴 움직임이 아득히 멀리서 느껴진다. 앞바퀴로 노면 충격을 넘으면 뒷바퀴가 느지막이 따라붙는다. 조금 과장을 보태 캡오버 구조 1t 트럭 움직임을 닮았달까. 그래도 운전이 어렵지는 않다. 앞바퀴 조향 각도가 충분해 좁은 길을 달리거나 U턴할 때 움직임이 제법 날쌔다. 회전 직경 11.5m로 일반 승용차와 비슷하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홍천강 주변 차박지에 도착했다. 차박지는 굵직한 돌이 펼쳐진 돌밭. 조심하면 일반 세단도 들어갈 수 있으나 방심하면 바닥에 생채기 만들기 딱 좋은 곳이다. 카니발은 조금 더 안심이다. 최저지상고가 172mm로 보통 세단보다 20mm가량 높고, 접근각과 이탈각도 각각 16도, 19도로 보통 세단보다 살짝 더 크다. SUV와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이지만.
덜컹덜컹 돌밭 위에 자리 잡고 차박 세팅을 시작했다. 핵심은 2열 시트다. 7인승 노블레스 모델을 바탕으로 빚은 아웃도어 모델은 기존 2열 ‘전동 릴렉션 시트’ 대신 수동 시트를 달고 앞쪽 슬라이딩 레일 길이를 늘여 트렁크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3열 시트는? ‘싱킹시트’라서 뒷차축 뒤쪽 공간으로 쏙 숨는다. 편평한 차박 공간 완성이다. 3열 싱킹시트가 차체 바닥보다 조금 높긴 한데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그 위에 길이 1900mm, 너비 1200mm짜리 2인용 공기 매트를 깔았다. 어디 하나 찌그러지지 않고 쏙 들어간다. 다 큰 성인 두 명이 충분히 누울 수 있다는 얘기다. 직접 신발 벗고 들어가 앉았다. 순간 이 차를 설명할 문구가 번뜩 떠올랐다. ‘차박의 끝판왕.’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다. 천장은 높직하고 사방이 큼직한 유리창으로 뻥 트였다. 천장엔 선루프 두 개를 통해 햇볕이 내리쬔다. 관짝이나 다락방 같지 않다. 채광 좋은 (천장까지 뚫린) 네모난 방이다.
비결은 남다른 구조다. 보통 SUV나 왜건에서는 뒷좌석 시트를 접고 그 위에 눕지만, 이 차에서는 차체 바닥 위에 바로 앉는다. 원래 차 높이도 1740mm(루프랙 제외)로 높은데, 바닥이 낮으니 천장이 높직이 멀어져 공간감이 널찍하다. 웬만한 텐트 부럽지 않다. 아니, 완벽에 가까운 바닥 평탄화와 튼튼한 철제 벽으로 보호받는 든든함까지 고려하면 텐트보다 낫다.
폭신한 삼각 쿠션을 등에 대고 본격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누렸다. 강물 흐르는 소리와 선루프 두드리는 빗물 소리를 들으며 최고의 자동차 잡지 <탑기어>를 읽고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입이 심심해 과자를 펼쳤고 컵홀더 위에 술도 한 잔 따랐다. 시트를 치우니 3열을 위한 컵홀더가 차박용 컵홀더로 변신했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면서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온다. 자, 지금부터는 영화 감상 시간이다. 일단 시동을 켜 엔진 열로 그간 차갑게 식은 실내를 덥힌다. 블루투스로 태블릿 PC를 연결한 후 3열 팔걸이에 세워두면 준비 끝. 냉난방 시설을 갖추고 12개 스피커로 완성한 크렐 사운드 시스템이 사방팔방 ‘열두 방’에서 울려 퍼지는 나만의 영화관 완성이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요즘 완벽한 사회적 거리두기 영화 관람이 아닌가. V6 엔진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동 켜놓고 까먹어버렸다.
영화 관람을 마치자 눈꺼풀에 무게가 실렸다. 잘 때다. 두툼하게 옷을 입고 침낭에 핫팩을 아낌없이 부어 넣은 후(엔진 시동은 껐다. 기름 아까우니까…) 들어갔다. 여전히 빗방울이 선루프를 ‘투둑투둑’ 두들긴다. 참 별소리 아닌데 그냥 기분이 좋다. 편평한 바닥에 누워 다리 쭉 뻗고 높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잠이 솔솔 쏟아진다. 길이 190cm짜리 2인용 매트를 깐 만큼 ‘大’자로 누울 수도 있지만, 겨울이라 침낭 속에서 번데기 자세로 쿨쿨 잤다.
다음 날 아침, 기지개 한 번 쭉 켜고 일어나 철수를 준비했다. 준비할 게 뭐가 있겠나. 그저 놀고먹은 쓰레기만 잘 정리하면 그만이다. 텐트를 접고 말리는 노동이 없다는 점이 또 차박의 매력이다. 반대로 단점은 좁고 불편한 잠자리지만 카니발이라면 그런 걱정도 없다. 그저 차 안에서 잘 때 트렁크를 말끔히 비울 수 있도록 짐 보관할 공간만 따로 갖추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래, 루프박스 하나만 올리자.
집으로 출발. 시작부터 굽잇길을 마주했다. 거대한 MPV로 굽잇길을 누비는 맛은 어떨까? 일단 힘은 충분하다. V6 3.5L 가솔린 엔진이 294마력 힘으로 2010kg 덩치를 힘차게 내몬다. 더욱이 6500rpm까지 회전하는 자연흡기 엔진 소리는 전율까지 조금 감돌 정도. 8단 변속기도 스포츠 모드에서 더 본격적으로 가속 기어를 문다. 파워트레인은 충분히 매콤하다.
굽잇길을 돌아나가는 감각은 물론 둔하다. 길이 5155mm 덩치와 3090mm 길쭉한 휠베이스 덕분에 느긋하게 스티어링 움직임에 반응하지만, MPV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행 질감은 준수하다. 현대차그룹 차세대 플랫폼 ‘N3’을 바탕으로 빚어 시트와 각종 파워트레인 높이를 낮춰 무게 중심과 운전자 시야를 끌어내렸다. 핫스탬프 부품과 초고장력강 사용 비율을 늘린 덕분에 비틀림 강성도 이전보다 더 크다.
고속도로에 올랐다. 8단 고속 기어를 맞물리며 V6 엔진 소리가 조용히 잦아든다. 고속 승차감이 참 인상 깊다. 무른 서스펜션이 노면 충격을 꿀꺽 삼키고, 2010kg 덩치가 관성으로 중심을 지키며 나아간다. 마치 파도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배처럼 차분하다. 이전 세대보다 흡차음재를 정성껏 둘러 노면 소음과 바람 소리도 크지 않다. 6기통 고급 세단을 빼닮았다.
풍요로운 첨단 운전자보조 장치는 당연히 빠짐없다. 고속도로 위에서 반자율주행을 누릴 수 있는 고속도로 주행보조 기능이 들어가 운전자는 손과 발에 긴장을 풀고 감시만 하면 된다. 곡선로와 과속단속카메라 앞 감속 기능을 비롯한 다채로운 첨단기술은 국내 모든 MPV를 통틀어 단연 최고다. 모두 400km를 달리는 동안 누적 연비는 1L에 10km를 기록했다. 나쁘지 않다. 종종 급가속했던 주행 상황과 2t 넘는 덩치까지 고려하면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다. 물론 고속도로 위주 주행이 한몫 단단히 했겠지만. 공인연비는 1L에 8.9km(7인승 19인치 휠)다.
난생처음 만족스러웠던 차박 시승이었다. 핵심은 낮은 바닥이다. 차 안에 앉아도 머리 위로 천장이 높이 솟아 쾌적하게 잘 수 있었고 다양한 활동을 여유롭게 소화했다. 카니발답게 햇빛가리개나 USB 소켓, 고급 사운드 시스템 등 쓸모 있는 뒷좌석 편의장치도 풍족하다. 기아 카니발 아웃도어는 준캠핑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뛰어난 차박 파트너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